아, 아프리카

케냐 다답캠프에서 찾은 소명...

st_kim 2014. 4. 12. 21:26

 

 

 

 

 

 

또 다시 고통과 절망의 땅으로 낙인 찍히는 과정의 되풀이인가. 동아프리카에 찾아온 기근은 더 이상 사람들에게 그리 충격적인 사실로 다가가지 않는 것 같았다. 이런 씁씁한 현실을 뒤로하고 수십 년간의 내전과 최악의 기근으로 수십만의 소말리아 난민이 발생한 케냐 다답난민캠프를 찾았다.

 

수십 년동안 케냐 국경을 넘어 소말리인들이 정착해 가는 다답지역에 지난 수개월 동안 수십만의 소말리인들이 더욱 격화되는 내전의 위협과 기근에 따른 절박함을 피해 목숨을 내건 여정으로 자신들의 마지막 운명을 걸고 있었다.

한 달 이상 되는 길고 처절한 여정 가운데 수많은 사람들, 특별히 아이들이 목숨을 잃어갔다. 어느 가정은 이 처절한 탈출 가운데 너무나 사랑하는 아이들을 굶주림으로 잃기도 하고, 또 역시 굶주림으로 허기진 하이에나에게 잃기도 했다.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좌절했을까? 그런데 이들에게 이런 감정조차 사치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거운 마음으로 다답난민촌 내 가정들의 실상을 보고자 찾아나섰다. 그리고 한 가정을 만나게 되었다. 젊은 부부와 두 명의 어린아이가 있는 가정으로 소말리아에서 이들 역시 한 달 가량을 걸어 몇 주전 이곳 다답캠프에 가까스로 도착했다 했다. 부부와 이야기 하는 동안 엄마의 품에 안겨있는 아이가 계속 울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지난 수년간 재난과 기근현장을 다녔던 연유일까 직감적으로 아이에게 문제가 있음을 느꼈다. 아이를 들여다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극심한 영양실조의 증상인 머리카락의 탈색과 복수가 비대하게 부풀어 오른 것을 발견하였다. 거기에 심한 탈수증상과 고역을 동반한 합병증 증상이 의심되었다. 당장의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동행한 현지직원을 통해 좀 더 상황을 확인하고 부모에게 아이를 가까운 곳에 NGO에서 운영하는 clinic에 데리고 가자 요청했다.

 

그 순간 전혀 예기치 않은 부모의 표정을 발견하게 되었다. 혹 치료비가 걱정되는 것이라면 염려하지 말고 빨리 이동하자 했다. 그런데 여전히 밝지 않은 부모의 표정을 보았다. 무엇일까 이들의 표정을 어둡게 만드는 것이..뭔가 있음이 분명했다. 현지직원을 통해 그 내막을 더 알아봐달라 요청했다.

 

그리고 들려준 그 내막은 참으로 기가 막혔다. 몇 주전 이곳 다답캠프에 도착하기 전까지 이 부부에겐4명의 아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탈출의 여정이 너무나 힘겨웠기에 가까스로 캠프에 도착한 뒤 곧바로 2명의 자녀가 앓기 시작했다 한다. 그 중 한 아이의 증상이 심상치 않아 캠프 안에서  NGO가 운영하는 clinic을 찾아 치료를 시작했다. 하지만 아이의 치료가 시작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아이가 결국 목숨을 잃었다. 부모는 낙담했다. 그런데 첫 아이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던 그 아픔이 여전히 살아있는 그때 또 다른 아이가 비슷한 증상으로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 주변에서 다시 clinic에 데려가야 한다 촉구했다. 부모는 망설였다. 2주도 되기 전에 첫아이를 잃었던 clinic에 다시 데리고 간다는 것이 이들을 망설이게 했다. 그럼에도 Clinic의 문제는 아니겠지란 생각으로 다시 clinic을 찾아 아이의 치료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신의 결정이었을까. clinic에서 치료를 받기 시작하던 두 번째 아이도 결국 오래지 않아 생명을 잃었다. 또 다시 부모는 슬픔에 빠졌다. 이번엔 하늘을 원망했다. 그리고 또 원망했다. 두 부부는 이렇게 몇 주 만에 2명의 자녀를 마음으로 묻어야 했다.

 

그때, 그 아픔이 여전히 생생히 남아있는 그때 저 먼 곳 한국이란 나라에서 온 이방인이 찾아와 지난 2주사이 2명의 어린 자녀의 생목숨을 앗아갔던 바로 그 clinic에 또 다른 자녀를 데려가자 말하는 이방인인 나를 만나게 된 것이다. ..사지라 여겨지는 그 곳으로 자신의 사랑스런 자녀를 내모는 내가 어떻게 보였을까?

 

나 역시 잠시 혼란에 빠졌다. 하지만 곧바로 지난 수년간 배웠던대로 인도적지원 활동가의 사명에 충실하고, NGO 활동가의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 부모, 특별히 완강히 거부하는 아빠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정말 유감이다. 하지만 그건 clinic의 문제가 아닌 아이의 상황이 손쓸 수 없을 정도였기 때문일 것이다. 남은 아이도 제때 치료받지 못하면 이미 목숨을 잃은 2명의 아이들처럼 될 수 있다. 만약 이곳 clinic이 싫다면 마을에 있는 더 큰 보건소로 가자..난 배운대로 이런 거친 말을 내밷고 있었다. 그들의 감정과 아픔은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듯

 

철옹성처럼 굳게 닫혀있는 듯한 아빠를 보았다. 주변의 이웃들까지 동원해 아빠를 설득, 아닌 위협아닌 위협으로 아빠를 코너에 몰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오랜 설득 끝에, 아니 좀더 솔직히 얘기하자면 위협 끝에 아빠가 마지 못해 동의를 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데려가도 싶었으나 어렵게 구한 일용직 일자리를 포기할 수 없어 다음날 이른 아침에 함께 가기로 약속했다. 캠프를 뒤로하고 다음날을 기대하는 나 스스로 승리감, 성취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잘했다 성태..

 

긴 밤을 보내고 다음날 이른 아침 약속한 시간에 다시 그 가정을 찾았다. 그리고 밝은 표정으로 clinic으로 이동하자 얘기를 했다. 그런데 아빠의 표정이 그리 밝지 않았다. 조금 뒤 직원을 통해 밤새 다시 고민을 했는데 아이를 clinic으로 데려가지 않겠다 말했다.

 

순간 화가 났다. 이런 무책임한 아빠가 어디있단 말인가? 아이를 죽이려 결심한 것인가?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내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게 된 것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런데 그 순간 내가 어떻게 해야할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그리스도인으로 어떤 결정을 내리는 게 맞을지 고민이 들었다. 잠시지만 너무나 고민이 들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지금 누구보다 아이를 살리고 싶어하는 것은 내가 아닌 아빠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결정하기까지 얼마나 고심에 고심을 했을까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 스스로 잠시의 시간을 갖은 뒤 결국 아빠의 결정을 존중해 주고 싶었다. 그리고 예수님도 그렇게 하지 않으셨을까 생각이 들었다.

 

현지직원을 통해 아빠의 결정을 존중해주겠다 얘기를 전했다. 그럼에도 혹 마음이 바뀌어 언제든 연락하면 즉시 달려오겠다 전하며 현지직원의 연락처를 남기고 기타 주의사항들을 설명해주었다. 힘겹게 삶의 사투를 벌이는 아이와 아빠를 뒤로하고 돌아서는 내내 마음에 혼란이 들었다. 내 결정이 잘한 결정일까. 아니면 인도적지원 활동가로서 무책임하고 철없는 생각이었을까..혼란스러운 마음으로 차량으로 이동하는 순간 누군가 등뒤에서 소리치며 달려오는 것이었다. 다름아닌 바로 그 아빠였다. 혹시 뭘 놓고간걸까. 아니면 정말 혹시 그사이 마음이 바뀐 것일까?

 

그때 아빠기 동행한 현지직원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누군가에서 존중 받는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며 살아왔는데 오늘 내 결정을 존중해줘서 정말 고맙다. 정말 고맙다.’

갑자기 가슴속에서 뭉클함이 잃었다. 뜨거워지는 눈시울을 억지로 참았다.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대신 아빠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그리고 이 가족 위에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기를 바라며 뒤돌아 섰다.  차에 오르고 숙소로 돌아서는 차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픔의 눈물, 감격의 눈물, 기쁨의 눈물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눈물을

 

누군가는 내가 생명 살리는 것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인도적지원 활동가로서 무책임하고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얘기할 것이다. 또 누군가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얘기할 것이다.

지금도 때때로 만약 다시 그 상황으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할까 생각을 해본다. 그럼에도 난 그때와 동일하게 그 아빠의 결정을 존중해 줄 것이다. 그리고 더욱 더 하나님의 보하심과 인도하심을 위해 기도할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지금까지 NGO 활동을 하면서 가장 잘한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난 20119월 케냐 다답캠프에서 내린 이 판단이라 말할 것이다.

'아, 아프리카' 카테고리의 다른 글

Sometines in April, Rwanda  (0) 2013.10.03
남수단 톤즈의 자전거탄 천사  (0) 2012.12.16
그럼에도 하늘은 파랬다.   (0) 2012.10.27
Ntarama 성당에서(르완다)  (0) 2012.08.18
아, 르완다...  (0) 2012.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