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희망이 보입니다!!
끝없이 펼쳐진 푸른 초원, 구름 한점 없는 파란 하늘의 아프리카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오랜 내전으로 인해 완전히 폐허가 되어버린 또 하나의 슬픈 아프리카가 나를 맞이한다. 바로 아프리카 최대영토국가인 수단이다.
수단은 지난 수십 년간 이슬람계 아랍인 중심의 북부 정부와 기독교계 아프리카인 중심의 남부 수단 간에 끝없는 내전이 진행되었다. 이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수백만의 국내유민이 발생하였다. 오랜 내전은 2005년 남부 수단과 북부 수단 간의 평화협정 체결로 종식되었고 지금은 하루하루 평화를 되찾아가고 있다. 하지만 남부수단 내전에서 영향을 받은 다르푸르와 동 수단에서도 북부 아랍정부를 상대로 한 내전을 벌여가고 있으며 여전히 잔혹한 살상이 지속되고 있다. 남부수단의 재건사업 중 하나로 월드비전 한국이 지원하는 보건의료사업의 착수작업에 참여하기 위해 지난 7월 남부수단 Tonj 지역에 3개월간 파견되었다.
지금 이곳은 남아있는 것이 거의 없다. 몸이 아프면 치료받을 수 있는 제대로 된 보건시설도, 내리쬐는 태양아래서의 갈증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깨끗한 식수시설도, 굶주림으로 하루하루 죽어가는 아이들의 배고픔을 해결해줄 식량도 그리고 아이들이 맘 놓고 뛰놀며 공부할 수 있는 학교도,...아무것도 남아 있는 게 없다.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이들의 이런 육체적 상처와 아픔보다 내 마음을 더 힘들게 하는 것들이 있다. 바로 내전으로 인해 이들 마음속에 생긴 치유할 수 없을 것 같아 보이는 큰 상처들이다. 이 상처가 너무나 크게 보인다. 이들 마음 가운데 남아있는 북부 아랍정부에 대한 증오와 반감들이 내 상상을 뛰어넘는다. 북부에서 생산되어 남부로 운송되는 코카콜라 조차도 북부 아랍정부가 독을 탔을지 모른다고 의심하는 이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하루하루가 반감과 증오심으로 불타오르는 이들의 모습이 내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한다.
하루를 시작하기에 앞서 NGO 활동가로서 이들에게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며 하루하루를 맞이한다. 눈앞에서 치료 가능한 질병으로 죽어가는 아이들을 보면 보건의료사업이 가장 절실해 보인다. 먹을 것이 없어서 땅콩으로 그것도 하루 한 끼를 해결하는 아이들을 보면 식량문제가 너무 중요해 보인다. 깨끗한 식수가 없어서 웅덩이에 고인 물로 갈증을 해결하는 아이들을 보면 식수지원사업이 먼저 되어야 할 것 같다. 내전으로 인해 남아있는 교육시설이 거의 없어 나무그늘아래 흙바닥에 앉아 공부하는 아이들을 보면 교육사업도 시급히 진행해야 될 것 같다. 이 밖에도 너무나 많은 어려움들이 눈에 아른거린다. 이 사업들만 진행이 되면 문제가 해결될 것 같아 보인다. 마음이 조급해 지려한다. 뭔가를 빨리 해야 될 것 같은 조급함이 엄습해 온다. 이럴 때마다 다시 한 번 내 자신에게 질문을 한다.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이 가운데서 나의 역할은 무엇일까?
모든 것들이 절실하다. 하지만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오랜 내전으로 남아있는 육체적 상처의 치료와 회복을 넘어 자신의 참 모습, 즉 건강한 사회 안에서 온전한 육체적, 정신적, 영적 자아를 발견하고 회복해 가도록 우리가 함께 있어 주는 게 아닐까. 오랜 내전이 만들어낸 아픔과 상처 그리고 증오로 가득 차 하루하루를 보내는 이들의 육체적, 정신적 상처를 치유하고 위로해 줌을 통해 결국엔 그들 자신이 얼마나 귀하고 가치가 있는 존재인지, 그리고 그들 자신이 귀한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정말 귀한 생명이라는 사실을 깨달아 가도록 디딤돌 역할을 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 아닐까. 비록 당장의 처한 상황은 이런 사실을 인정할 수 없을 것 같아 보이지만 지금 눈에 보이는 현실 너머에 있는 보이지 않는 미래를 기대하며 이들의 얘기를 들어주고 격려하며 꿈과 희망을 심어 주는 게 나의 역할이 아닐까. 그리고 나 역시도 이들과 함께 하면서 내 안에 있는 상처와 아픔들을 치료받고 격려받길 원한다.
내가 정말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아 보이는 현실들로 인해 이들 스스로 본인들에 대한 삶의 희망을 잃어가는 것이 두렵다. 아이들이 부모들에 대한 희망을 잃어가고, 부모들도 아이들에 대한 희망을 잃어가는 것이 두렵다. 서로가 서로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잃어가는 것이 두렵다. 그리고 이런 모습들 가운데 혹이라도 나 역시도 이들에 대한 희망을 잃게 될까봐 두렵다. 그래서 날마다 기도한다. 이들과 나의 희망을 위해서...
그런데 오랜 내전으로 폐허가 되어 다시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아 보였던 이곳에서 조금씩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다. 다름 아닌 사람을 통해서 희망을 발견하고 있다. 나라를 생각하고 이웃을 생각하는 이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한다. 자신들을 희생하며 남부 수단의 재건을 위해 속속 투신하는 젊은이들에게서 희망을 본다. 치료 가능한 질병으로 죽어가는 아이들을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발버둥치는 부모들에게서 희망을 본다.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서슴없이 자신의 음식을 건네는 이웃들에게서 희망을 본다. 나무그늘아래 흙바닥이 학교의 전부이지만 배움에 대한 열망으로 이른 새벽부터 몇 시간을 걸어와 공부하고 다시 집으로 몇 시간을 걸어 돌아가는 아이들을 통해서 희망을 본다. 이들을 통해 그리도 목말라했던 희망이라는 단어를 찾아가고 있다. 그리고 기대한다. 이들의 밝고 아름다운 미래를…….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