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이 시대의 진정한 영웅입니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놀이를 할 때면 너나할 것 없이 서로 영웅 흉내를 내곤했었다. 어떤 친구는 슈퍼맨으로, 어떤 친구는 배트맨으로 그리고 어떤 친구는 역사 속 위대한 장군으로...나 역시 영웅 흉내를 내며 언젠가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꾸곤 했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영웅을 찾는다는 것은 일상생활과는 너무나 멀리 떨어진 비현실적인 이야기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는 오늘 이곳 아이티에서 내가 그리 찾고 싶어 하던 진정한 영웅들을 발견하였다.
조니를 처음 만난 건 월드비전 사무실 옥상에서였다. 잠시 임시숙소 모델을 확인하는 가운데 누군가 매우 낙담한 모습으로 고개를 떨군채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순간 서로 눈이 마주쳐 안부 인사를 주고받는 가운데 조니가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상황이어서 무슨 일일까 궁금해 하는 순간 이번 지진으로 인해 살던 집이 붕괴되었는데 그때 부인이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행히 올해 세 살 난 아이는 무사했다지만 부인은 끝내 사망하고 말았단다.
그 순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무슨 말로 이 친구를 위로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하루아침에 잃었는데 그 무엇으로 위로가 될 수 있겠는가. 오히려 어줍지 않은 위로가 더 상처를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잠시 후 조심스럽게 옆으로 다가가 흐느끼는 어깨를 감싸주었다. 그 순간 내가할 수 있는 것은 그 것 밖에 없었다. 잠시지만 주님의 위로하심을 구했다. 그리고 조니에게 좀 더 혼자 있는 시간을 주기위해 조용히 내려왔다.
조니를 다시 만난 건 월드비전이 지원하고 있는 IDP(국내유민) 캠프에서였다. 누군가 분주히 뛰어다니며 일을 추진하고 수혜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모습에 열정이 느껴졌다. 그런데 그게 바로 조니가 아닌가?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그 순간의 조니는 내가 처음 봤던 아파하고 낙담하던 조니가 아니었다. 가슴이 뭉클해져왔다. 그날 조니와 남은 일정을 동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주님께서 왜 이 친구와 다시 동행하게 하시는지 궁금해졌다. 조니의 역할이 월드비전이 지원하는 IDP(국내유민)캠프의 전체적 관리를 책임지는 직책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조니는 언제 그랬느냔 듯이 남자답고 열정이 가득 배어난 모습이었다. 그러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누게 되었고 그 가운데 부인을 잃은 상처에 대해 자연스럽게 얘기하게 되었다. 가만히 들어주었다. 그게 내가할 수 있는 최선이라 생각이 들었다.
오늘 하루 조니로 인해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오늘 하루 조니로 인해 또한 감사하고도 기쁜 하루였다. 지울 수 없을 것 같은 큰 상처와 아픔이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본인에게 주어진 사명이 있기에 아픔과 두려움 가운데서도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조니의 모습에서 이것이 바로 진정한 용기가 아닐까 생각을 해보았다.
월드비전 아이티 직원가운데 이번 지진으로 인해 조니와 같이 한 순간에 사랑하는 가족과 모든 가산을 잃게 된 직원들이 수십 명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아픔보다 이웃의 아픔을 먼저 생각하고 돌보는 이들의 모습이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그리고 이들의 모습 가운데 잊혀져가던 나의 어린 시절 영웅의 모습에 대한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하지만 이들의 모습은 어린 시절 내가 생각했던 영웅의 모습과는 너무나 달랐다. 대중을 사로잡는 카리스마도, 근육질의 몸매도 그리고 특별한 초능력도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오늘 나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새로운 영웅의 모습을 그리게 되었다. 바로 이들이 이시대의 진정한 영웅이 아닐까?
오늘도 삶의 현장 어딘가에서 아픔과 두려움 가운데서도 본인이 가야하는 길이기에 한 발 한 발 내딛고 나아가는 조니와 같은 이들에게 진심어린 존경과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
당신이 이시대의 진정한 영웅입니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이곳에서 또 하나의 희망을 발견한다.